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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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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이름에 붙은 트라쿠스는 트라키아 출신이라는 뜻으로 가난한 농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로마 군단의 병사로 입대하였다. 당시는 아직 카라칼라의 '안토니우스 칙령'이 공포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속주민은 로마 군단에 보조병으로 입대하여 20년간 복무하는 것이 로마 시민권을 얻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고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도 그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기골이 장대했던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황제가 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눈에 띄어 근위대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시절에는 라인강의 로마군단에서 신병훈련 책임을 맡은 대대장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던 중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병사들 사이에서 많은 신망을 얻었고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살해되자 병사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로마 원로원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황제 즉위를 인정했지만 탐탐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로마군 최정예 서방 병력의 지지를 받는데다, 원로원은 세베루스 왕조 치하 아래에서 나날이 약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도 원로원과 로마인들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를 심정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대대로 트라키아 출신인데다 이민족의 혼혈일지도 모르는 애매한 혈통, 그것도 본인 대에 와서야 보조병으로 복무해 로마시민권을 딴 로마황제였다. 쉽게 말해, 안토니누스 칙령 이전부터 로마인이었어도 변방 태생의 이민족인지 반이민족이 국적취득 후 황제가 된 사람이었다. 따라서 로마 원로원은 쿠데타로 옹립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를 반(半)야만인이라고 대놓고 얘기했다. 또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일개 대대장 출신에, 그것도 신병 훈련 교관에 불과한데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승진한 여타 다른 하급장교 출신들과 비교해도 교양이 상당히 부족했다. 그래서 모국어 라틴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막시미누스는 누구보다 교양있고 로마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원로원 의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 즉위 후에도 수도 로마에 가기보다는 라인강에 머물며 게르만족 격퇴에만 몰두했다. 어쨌든 병사들의 신망이 좋고 용맹도 뛰어난 만큼 재위 3년 동안은 계속해서 승전보를 수도 로마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3년 동안 국경에서 성공적으로 게르만족를 격퇴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로마 원로원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이유는 막시미누스가 계속 승리한 것이 시샘난 이유가 아닌, 막시미누스 때문에 군자금으로 세금을 뜯어가고 올라오는 승전보고서도 상관이 명령하는 어조로 통보하는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르마니아 전쟁 중 부교설치 과정에서 원로원 의원 일부가 참여한 막시미누스 암살 시도 사건이 벌어지는데, 막시미누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더 강하게 대응한다. 또 그는 외적과의 전쟁에 많은 군자금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사회복지기금으로 사용될 예산과 무상배급품까지 군자금으로 유용하도록 명한다. 따라서 로마와 이탈리아 그리고 부유한 북아프리카 지방, 아시아 속주 등 동방 일대에서는 가혹한 세금징수와 약탈에 가까운 수탈에 못 이겨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폭발직전까지 치솟는다. 그러던 중 AD 238년 3월 아프리카 속주 총독 고르디아누스과 같은 이름의 그 아들 고르디아누스가 현지 올리브, 밀, 무화과 등을 재배한 대농장 지주들에게 황제로 추대된다. 고르디아누스 가문은 오늘날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방의 고르디움에서 기원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클리엔테스 후손으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카라칼라 시대때 원로원에 편입된 매우 부유한 신흥 귀족가문이었다. 이때 고르디아누스 총독은 79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제위에 욕심이 있어 미리 황제를 상징하는 보라빛 망토와 장신구 등을 준비한 뒤 카르타고로 들어간다. 이어 그는 황제 추대 직후 그 사실을 로마 원로원에게 통보했다. 또 그는 비밀리에 원로원에 사람을 보내 여러 인사들과 접촉 후 자신이 반란을 일으켰음에도 이를 정당화시켜달라고 로비까지 벌인다. 이 결과, 고르디아누스 부자의 황제 승인요구서가 로마 원로원에서 낭독되었을 때 원로원 의원들은 대항마로 고르디아누스 부자를 인정하고 황제로 그대로 승인해준다. 그들이 바로 로마 원로원이 내세운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대항마 고르디아누스 1세와 고르디아누스 2세다. 아울러 원로원은 이때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로마 원로원에 의해 국가의 적으로 선포한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진중에서 전쟁 중 졸지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버림받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분노하여 즉각 군단을 이끌고 수도 로마로 향했다. 이에 로마 원로원은 고르디아누스 1세와 고르디아누스 2세에게 서둘러 로마로 돌아와 방어에 나서도록 하였지만, 이 계획은 처음부터 꼬이게 된다. 왜냐하면 원로원은 고르디아누스 부자를 인정해줬음에도, 이들 부자의 요구와 달리 자신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누미디아 속주의 총독 카펠리아누스를 면직처리하지 않고 그에게 권고만 취하며 "새 황제들이 당신을 면직처리해달라고 하니, 일단 복귀해달라"고 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로원의 판단과 달리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와 카펠리아누스는 총독이 되기 전부터 사적으로 서로 앙숙지간인데다, 북아프리카로 건너온 이후 재판과 행정실무 처리과정에서 이견을 보여 무척 사이가 나빴다. 따라서 카펠리아누스는 원로원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반발해, 현직 총독으로서 즉각 대응한다. 이때 누미디아 속주의 로마군은 카펠리아누스의 지휘 아래 AD 238년 4월 아프리카 속주의 카르타고를 공격한다. 이에 고르디아누스 부자는 카르타고 내 경비병력까지 긁어 모아 북아프리카 일대 로마 최정예 병력과 맞선다. 하지만 이 싸움은 누미디아 총독 카펠리아누스가 가진 야전사령관 능력과 잘 훈련된 로마군을 상대로 게임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고르디아누스 2세는 전투 중 그대로 전사했고, 카르타고 시는 누미디아 로마군에게 금세 함락된다. 그리고 이때 아들의 전사 소식과 카펠리아누스의 단호한 입장을 전달받은 고르디아누스 1세는 체포 직전 자살해버린다. 이렇게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가 어이없게 몰락하자, 로마 원로원은 상당히 당혹해한다. 다행히 카펠리아누스는 이후 막시미누스 쪽에 붙지 않고 그만 뒀기 때문에 더 큰 소란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군을 이끌고 이탈리아 국경 근처까지 내려온 상태였고, 원로원은 고르디아누스 1세, 고르디아누스 2세를 황제로 승인해준 터라 화해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원로원은 오래된 명문귀족들로 집정관 경력이 풍부하고, 군대 경험과 행정실무 경력을 두루 거친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와 발비누스를 공동 황제로 선포한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 원로원은 고르디아누스 일가 지자들의 폭동과 협박에 못이겨, 고르디아누스 1세의 어린 외손자를 고르디아누스 3세에게 카이사르 직위를 내린다. 로마 원로원의 이러한 선택은 고육지책이었지만 의외로 큰 효과를 발휘했다.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는 로마 원로원을 응징하고자 호기롭게 이탈리아 본토로 들어왔지만 이미 그는 로마인들에게 인기가 최악이었다. 또 막시미누스는 로마 원로원의 결정에 따라 국가의 적인터라 이탈리아 도시들은 남녀노소 힘을 모아 완강하게 저항했다. 따라서 전투가 몇 달 동안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로마군 병사들도 부대 내 식량이 떨어지고 같은 동포들까지 자신들을 원수 취급하자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를 배신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로마 황제는 공식적인 지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죽음 이외에는 그만둘 방법이 없었고 결국 막시미아누스 트라쿠스는 후계자인 아들과 함께 AD 238년 5월 자신을 추대한 병사들 손에 살해돼 인근에 진을 펼친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에게 그 머리가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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